제12회 아마도전시기획상 포인트 니모
The 12th Amado Exhibition Award Point Nemo

 글 류희연

48° 52.6' S, 123° 23.6' W.위도와 경도로 이루어진 이 좌표를 해석해 보자면, 적도에서 남쪽으로 48도 52.6분, 본초 자오선으로부터 서쪽으로 123도 23.6분 떨어진 지점임을 알아낼 수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이 좌표는 ‘포인트 니모(Point Nemo)’로 불린다. ‘니모(Nemo)’는 라틴어로 ‘아무도 없다’는 뜻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바다라는 특징을 반영한 이름이다. 해양 도달 불능점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어느 육지보다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인적이 드 물고 수온이 낮아 해류가 잘 섞이지 않아 생명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바다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포인트 니모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러시아연방우주국(Roskosmos),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유럽 우주기구(ESA) 등 각국의 우주 기관이 우주쓰레기를 띄워두거나 떨어뜨리는 지점이 되었다. 현재 200개가 넘는 수명을 다한 인공 우주 비행체가 가라앉은 ‘우주선 묘지’이며, 2030년에 퇴역할 국제 우주정거장 역시 이곳에 묻힐 예정이다.미지의 영역을 향한 지적 호기심이자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위해 탄생한 우주 비행체의 최종 종착지.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황량한 침묵만이 맴돌며, 관광이나 어업으로 방문하는 이들도 없기에 인간으로부터 고립된 포인 트 니모는 좌표로만 존재한다. 우주선의 잔해가 지구로 재진입할 때 대기와의 마찰로 불타거나 조각난 채 떨어지도록 유도된 장소이기에, 이곳은 철저히 배제된 지평선 너머 고독한 영토로 남는다. 절대적 적막이 흐르는 가 운데, 일부는 대기권에서 소멸하고, 파편 조각들이나 타지 못한 육중한 크기의 비행체들은 엄청난 속도로 바다에 추락한다. 한때 각광받던 기술의 산물은 이제 우주 쓰레기가 되어 심해 속으로 가라앉으며 영면에 든다. 우주 쓰레기의 폐기장이 된 바다는 인류의 기술 발전에서 발생한 환경적 비용과 함께 불투명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그렇게 잊힌다.《포인트 니모》는 이 좌표를 망망대해에 위치한 단순한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현재를 추동하는 자본의 좌표를 밝혀내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기술의 성공 신화 이면에 자리한 포인트 니모는 인간이 대양과의 관계를 분리해 온 방식을 보여준다. 그렇게 행성에서 가장 광활한 영역을 차지하는 바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쌓이고 사라지는 장소이자, 무한한 자원으로 여겨지며 끊임없이 소모되어 왔다. 인간이 구축한 관계 속에서 바다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이익이 집중되는 중심부를 위해 끝없는 생태적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포인트 니모는 단순한 물리적 경계를 넘어, 인간의 권력 구조와 탐욕이 투사되는 무대로 기능하며, 인간과 바다의 대사적 균열이 집약된 장소 가 되었다. 전시는 이 비대칭적 관계를 조망하며, 현재의 생활 양식 아래 배제되고 유린된 존재와 영역을 가시화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망각되지 않도록 심연을 향해 나아간다.지평선 너머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전시는 비가시화된 세계의 흔적을 쫓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지는 행위로 인해 길을 잃은 해방의 서사를 붙잡고자 한다. 해방은 과거의 은폐된 것들을 복원하는 과정만으로 이루 어질 수 없다. 자본의 세계적 순환 속에서 불안정하고 모순적인 요소들을 포착하며, 그것이 어떻게 위기를 흡수하고 변형하며 체제를 유지해 왔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전복될 것처럼 보였던 순간마다 스스로를 조정하며 체계를 유지해 왔다. 위기가 체제의 동력이 되었고, “자본주의는 이제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문화적∙이데올로기적으로도 자기조절 능력을 갖춘 체제가 되었다.” 불균형을 가리는 또 다른 기제로 작동하는 이 체제 는, 특히 다중적 위기가 발생할 때 균열을 드러내기보다 이를 완화하거나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다.이러한 조정은 위기를 극복하는 기술로 보이지만, 실상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이를 분산시키고 새로운 형태로 변형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에 가깝다. 전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고, 유연하게 조정되면서 지속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체제의 안정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균형 속에 서 끊임없이 조정됨으로써 유지된다.자본이 위기를 조정하며 지속되어 온 방식은 드넓은 대양을 따라 확장되어 왔다. 이로 인해 바다는 단순한 교역로가 아니라, 자본의 흐름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그 이면의 사회적 관계와 물질적 조건을 흐릿하게 만드는 매개 가 되었다. 에리카 발솜(Erika Balsom)은 그녀의 저서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에서 현재 세계 무역의 90퍼센트 이상이 해상 운송을 통해 이루어지는 점을 주목한다. 나아가 금융 자본, 정보, 이미지 등이 탈물질화된 경 향으로 인해 노동이 이제 비물질적인것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근거 없는 신화를 의심한다. 발솜은 물질 노동이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이 바다 를 통해 부유한 나라의 소비자에게 도달” 하기에 우리가 여전히 물질 노동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모호함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바다를 통한 물질 순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수면 위 정처 없이 표류하는, 서서히 가라앉는, 이미 수면 아래로 침몰해 버린 존재들을 살피며, 가려진 순환성이 가리키는 좌표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는 세계를 지탱하는 보편적 감각과 사고방식이 보이지 않는 존재 들과 영역을 배제하고 착취하는 논리 위에 서 있음을 직시하며, 그것을 다시 조율하고 구성하기 위한 여정이 될 것이다.대양의 유동적이고 경계 없는 흐름을 상상하며, 전시는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을 모색한다. 전시를 구성하는 7명의 작가가 전시장에 펼치는 이야기들은 세계를 축소하거나 확대하며, 가려진 영역을 드러 내고 현재를 작동시키는 질서와 균형에 관해 질문한다. 전시는 지상층(2층)과 지하층(1층)으로 이루어진 아마도예술공간을 해수면 위와 아래를 암시하는 장치로 설정하며, 이를 통해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접근한다. 지상층은 수면 위에서 가라앉아 잊힌 존재들과 장소를 탐색하기 위한 감각을 다룬다. 이는 주어진 세계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우리가 속한 현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감각의 변화가 필요하 다. 지하층은 수면 아래에 가려진 영역과 이를 구성하는 질서를 조망해 깊게 내려갈 수록 선명해지는 시야를 보여준다. 참여 작가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와 감춰진 영역을 인지하고 감각하며, 이를 통해 사회 구조 속 비가시 적 위계를 포착하고, 완전해 보이는 체계의 틈을 벌려 균열을 가한다. 이러한 시도가 지닌 함의와 그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현실을 차분히 응시하며 길을 잃은 서사를 붙잡는다.

(중략)

 전시 공간의 벽면을 가득 채운 김민성의 (2025)는 폭발하는 이미지들이 뒤얽힌 장면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현실과 정보의 양가적 성격을 드러낸다. 원자폭탄이 거대한 뭉게구름을 자아내며 폭발하는 순간, 백린탄 이 터지며 하늘에서 불꽃처럼 쏟아지는 장면, 최근 스페이스X의 인공위성이 혜성처럼 불길을 그리며 추락하는 순간까지. 작가는 이러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화학물질이 불타며 만들어내는 광경의 파괴성과 그 안에 내재된 기묘한 아름다움을 환기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끝없이 소비하며, 그 반복 속에서 실존의 문제들은 무력화된다. 작가는 압도적인 정보와 이미지의 증식이 초래하는 무감각을 단순히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장면들을 겹겹이 쌓아 흐려진 경계를 만들어낸다. 화면을 이루는 수많은 레이어들은 우리가 정보를 수용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며, 이미지들이 현실을 어떻게 매개하는지를 다시 질문한다. 작가는 폭발이라는 찰나의 순 간을 고정하는 동시에, 이미지의 과잉이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이는 정보의 구조를 해체하고 무너진 의미의 조각들 속에서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를 다시 구성하는 시도이며, 감각이 둔화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다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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