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환경을 선택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이는 이미 공기나 중력처럼 우리를 에워싼 삶의 기본 조건이 되었으며, 주체와 세계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과 모니터의 매끄러운 인터페이스를 타고 흐르는 이미지들은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에 의해 쉼 없이 생성되고 소진되며, 우리는 그 속도에 시각을 내맡긴 채 감각의 자동화를 경험하게 된다. 정보는 의미의 형태로 뇌리에 안착하기도 전에 새로운 데이터에 밀려 휘발되고,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 물리적 저항 없이 스크린 위를 유영할 뿐이다. 사용자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시각 정보의 나열은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우리에게 안락함을 제공하지만, 역설적으로 대상과 직접 마주했을 때 느껴야 할 마찰을 제거한다. 김민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저항 없이 미끄러지는 스크린의 표면에 균열을 낸다. 그간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를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비하도록 만드는 알고리즘적 구조를 다루었으며, 자동화된 감각에 의존하는 오늘날의 환경을 재구성해 왔다.
《NOCEBO》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에 등장하는 그리드는 데이터 중심의 시스템적 질서를 가시화하는 핵심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작가가 호출한 그리드는 미술사적 맥락의 환원적 격자이기 이전에, 가상의 3차원 공간에 위치와 존재를 부여하는 디지털 좌표의 성격에 가깝다. 3D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그리드는 객체가 존재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이자, 비물질적인 데이터를 입체적 환영으로 바꾸며 무한한 공간으로 연장되는 구조다. 따라서 하나의 화면 안에 머무르기보다 스크린 너머의 잠재적 공간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투사하는 원심적(Centrifugal)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무한한 가상 공간을 향해 뻗어 나가려던 좌표가 캔버스라는 물리적 경계에 가두어지는 순간, 김민성의 그리드는 매체 스스로의 조건을 되묻는 재귀적(Recursive) 장치로 변모한다. 가상의 무한 확장이 회화의 평면이라는 물리적 임계점에 부딪혀 내부로 되돌아오는 이 과정은, 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되는 디지털 시대에 회화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스크린 바깥으로 무한히 뻗어 나가던 외파적 질서는 캔버스의 가장자리, 물감의 두께, 마스킹 테이프를 떼어낸 자국, 그리고 반복되는 손의 행위를 통해 표면으로 회수되며 확장과 회귀, 확산과 응축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중적 운동을 형성한다.
무한히 확장되는 디지털 데이터의 질서가 회화라는 멈춰진 화면에 붙들리는 지점에서, 시뮬레이션의 환영은 희석되고 우리는 비로소 표면의 물질성과 대면하게 된다. 가상 공간의 깊이를 투사하던 좌표 위에 내려앉은 물감은 관객의 시각 경험을 변화시킨다. 화면 위에 구축된 가상의 깊이는 겹겹이 쌓인 물감의 층위라는 실제적 두께에 의해 상쇄되고, 시선은 이미지 내부로 침잠하는 대신 캔버스의 표면에 머물게 된다. 이때 그리드는 더 이상 가상을 향해 열린 투명한 좌표의 통로가 아닌 시선을 붙드는 불투명한 물질적 층위가 되며, 화면은 시스템의 규칙과 신체적 실존이 서로를 부정하고 갱신하며 충돌하는 장으로 작동한다.
작가가 이를 화면 위에 구현하는 방식은 수행적이며 물질적이다. 김민성의 그리드는 수학적 계산에 의한 매끄러운 픽셀이 아닌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물감을 올린 뒤 이를 다시 떼어내는 노동의 흔적에 가깝다. 균질성과 완결성 대신 수작업의 불완전함을 담고 있는 이 흔적은 납작한 스크린과는 다른 마찰을 표면 위에 드러낸다. 화면 곳곳에서 직선의 질서를 배반하며 휘어지는 격자들은 가상의 원심력과 회화의 구심력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파동을 전달한다. 또한 작가는 에어브러시로 그려낸 불완전하고 어긋난 선들과 드리핑을 교차시키며 화면 위에 두께를 만든다. 완벽하게 정렬되지 않는 선의 미세한 떨림과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는 물감의 질감은 비물질적인 데이터 환경이 배제해 온 실재를 호출하며 자동화된 시각 경험에 마찰을 일으킨다.
전시명인 '노시보'는 이러한 충돌 속에서 작동하는 작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알고리즘과 AI가 일상화된 환경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 이를 비트는 방식으로 알고리즘적 체계를 회화의 물질성, 그리고 작가의 제스처와 충돌시킨다. 알고리즘적 흐름과의 충돌 속에서 발생하는 그리드의 일렁임은 비판적 감각의 토대가 되며, 이 감각은 관성적인 시각을 지연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시보는 단순한 부정적 효과가 아니라, 디지털 감각에 깊이 잠식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끊임없이 경계하려는 긴장 속에서 발생하는 자각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는 현대의 시각 정보 환경을 수용하면서도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기를 반복하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조직한 시각 질서와 그에 대한 회화적 저항이 교차하는 김민성의 화면은 충돌의 에너지를 긴장된 상태로 유지하며 스스로 비평적 매체가 된다. 그리드라는 시각 구조의 틀과 물성의 제스처가 겹쳐지며 발생하는 마찰은 다시금 본다는 것의 물리적 조건을 환기하고, 즉각적인 만족과 소비를 지향하는 디지털 스크린과 달리 관객을 더 오래 머물게 한다. 화면 위의 어긋남과 일렁임은 불안을 생산하기보다, 관성에 길들여진 감각을 지연시킴으로써 그 틈에서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로써 김민성의 회화는 매끄러운 환영 너머, 우리 감각의 현재를 드러내는 비평적 장으로 작동한다.